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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뉴스

유럽인들은 언제, 어떻게 흰 피부를 갖게 되었을까?

by 한국고고학콘텐츠연구원(플라스캠프) 2015. 4. 7.


우리는 `유럽인들은 본래 피부가 흰색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흰 피부, 큰 키, (성인이 되어도)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 등의 형질이 유럽에 나타난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고 한다. 지난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렸던 미국 자연인류학회 84차 연례회의에서는, 유럽에서 최근 이루어진 진화에 대한 극적인 증거가 제시되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오늘날의 유럽인들은 8,000년 전 유럽 대륙에 살았던 사람들과 별로 비슷하지 않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고대 인류집단의 유전체가 해독되면서 유럽인의 기원 문제가 주목을 받아 왔다. 올해 초 한 다국적 연구팀은 유럽 전역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채취한 고대인 83명의 유전체를 대상으로 DNA의 핵심부분을 비교분석하여, "오늘날의 유럽인들은 최소한 세 가지 종류의 수렵채집인 및 농경민 집단이 섞여 탄생했으며, 이들 집단은 과거 8,000년간에 걸쳐 독립적으로 유럽땅으로 이주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 흑해 북쪽의 초원에 살던 얌나야 유목민(Yamnaya herders)이 대규모로 이동하면서, 인도유럽어를 유럽에 전파했다"고 한다(http://news.sciencemag.org/archaeology/2015/02/mysterious-indo-european-homeland-may-have-been-steppes-ukraine-and-russia).

동(同)연구진은 후속연구를 통해, 지난 8,000년 동안 강한 자연선택을 받았던 유전자(형질)들, 즉 `유럽의 환경에 적합하여 지난 8,000년 동안 유럽 전역에 급속도로 퍼져나간 유전자(형질)들`이 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하버드 대학교의 데이비드 라이히 교수(개체군 유전학)의 연구실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이아인 매디슨(유전학)이 주도하는 연구진은, 고대 유럽인들의 유전체를 현대 유럽인들의 유전체와 비교하여, "식생활과 피부색소에 관련된 유전자 5개가 강한 자연선택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현대 유럽인들의 유전체 데이터는 「1000 Genomes Project」에서 얻었다.)

이번 연구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지금으로부터 8,000년 전 유럽의 수렵채집인들은 유당을 소화시킬 수 없었다`는 선행연구 결과를 재확인했다. 또한 연구진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추가로 발견했는데, 그것은 최초의 농경민도 유당을 소화시키지 못한 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즉, (7,800년 전 근동지방에서 이주한) 농경민들과 (4,800년 전 흑해 연안의 초원에서 이주한) 얌나야 목축인들은 LCT 유전자가 없어서, 성인이 되면 우유 속의 유당을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에 의하면, 유럽 전역에 유당소화 유전자가 퍼진 것은 약 4,300년 전이라고 한다.

둘째로, 피부색에 관한 연구결과를 살펴보자. 연구진에 의하면, 다양한 장소에서 진화가 모자이크식으로 일어난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즉, 3개의 독립적인 유전자들이 흰색 피부의 탄생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져, 지난 8,000년 동안 유럽인의 피부가 점점 더 하얗게 된 스토리는 매우 복잡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현생인류는 본래 약 40,000년 전 유럽에 정착했는데, 그때는 피부색이 짙었기 때문에 일조량이 많은 저위도 지방에 살기에 유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제시된 데이터에 의하면, 약 8,500년 전 스페인, 룩셈부르그, 헝가리의 초기 수렵채집인들 역시 짙은 색 피부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즉, 그들은 2개의 유전자(SLC24A5, SLC45A2)가 없었다고 하는데, 이 유전자들은 피부를 탈색시켜 오늘날의 유럽인들처럼 창백한 피부를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훨씬 더 북쪽 지방(태양의 고도가 낮아 창백한 피부색이 유리한 지역)으로 올라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연구진이 스웨덴 동남부 모탈라 유적지에서 채취된 7,700년 전의 유럽인 7명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SLC24A5와 SLC45A2를 모두 갖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그들은 제3의 유전자인 HERC2/OCA2를 보유했던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푸른 눈, 흰 피부, 금발에 관여하는 유전자라고 한다. 따라서 북유럽의 수렵채집인들은 이미 7,700년 전에 흰색 피부와 푸른 눈을 갖고 있었지만, 중부 및 남부의 유럽인들은 아직 검은 피부를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편, 극동지방에서 유럽에 도착한 최초의 농경민들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그들은 SLC24A5와 SLC45A2를 모두 갖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에 의하면, 그들은 유럽의 원주민(수렵채집인)과 이종교배를 통해 두 개의 유전자 중 하나(SLC24A5)를 유럽 전역에 퍼뜨려, 중부 및 남부 유럽인들이 흰색 피부를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다른 유전자(SLC45A2)는 5,800년 전 이후에 출현빈도가 부쩍 증가했다고 한다.

셋째로, 연구진은 유당소화능력과 피부색 이외에도 다양한 형질에 관한 유전자들을 분석했다. 예컨대 키의 경우, 많은 유전자들이 상호작용한 결과 탄생한 형질인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8,000년 전 북부 및 중부 유럽에서 신장과 관련된 유전자들 여러 개가 강력한 선택을 받았으며, 4,800년 전 얌나야족이 이주하면서 유럽인들의 신장이 더욱 커진 것으로 밝혀졌다. 얌나야족은 모든 종족 중에서 `키가 커질 수 있는 유전적 소인`을 가장 많이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추정은 그들의 골격을 측정한 결과와 일치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키 작은 형질이 선택되기 시작한 것도 8,000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특히 스페인 사람들의 키가 작아지기 시작한 것은 6,000년 전의 일로, 아마도 추운 날씨와 빈약한 식단에 적응한 결과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면역에 관련된 유전자 중에서는 강력한 선택을 받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는 `농업이 발달한 이후에 질병이 증가했다`는 기존의 가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특정 유전자들이 강력한 선택을 받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니나 자블론스키 교수(고인류학)에 의하면, 색소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필요한 이유는 `비타민 D 합성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http://www.sciencemag.org/content/346/6212/934.summary?sid=91e8ebfd-8581-4bd7-bac5-26dc16bf5a87). 즉, 북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종종 UV를 충분히 쪼이지 못해 비타민 D 합성이 부족하므로, 자연선택을 통해 두 가지 유전적 해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해법은 창백한 피부를 진화시킴으로써 UV 흡수를 증가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 해법은 유당 소화능력을 증가시켜 유당과 비타민 D(우유에 많이 존재함)를 많이 섭취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백인이 출현한 이유에 대한 기존의 설명은 매우 간단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 의하면, 인구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선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백인의 다양한 형질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는 최근 8,00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진화를 잘 설명했다"고 자블론스키 교수는 논평했다. 한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조지 페리 교수(인류유전학)은 이렇게 논평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유전적 가능성이 식생활과 서식지환경에의 적응에 따라 형성되는 과정을 잘 설명했다. 이번 연구로 인해, 우리는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

※ 원문정보: Iain Mathieson, "Eight thousand years of natural selection in Europe", bioRxiv, doi: http://dx.doi.org/10.1101/016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