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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뉴스

세계 최고(最古)의 석기를 둘러싼 의문

by 한국고고학콘텐츠연구원(플라스캠프) 2015. 4. 23.



케냐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最古)의 석기로 인해 "복잡한 도구 만들기는 호모 속(屬)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기존의 이론이 종말을 고하게 생겼다. 지난 4월 1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 고인류학회 연례회의 석상에서 발표된 330만 년 전의 석기는 최초의 호모 속이 등장했던 때보다 연대가 앞서는 것으로 밝혀져, 호모 속 이전의 호미닌 조상들도 복잡한 도구를 만들 만한 지능과 재주를 갖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발견은 진화의 핵심 이정표 중 하나인 도구사용과 관련된 랜드마크적 발견"이라고 이번 모임에 참석했던 캘리포니아 과학아카데미의 제레세네이 알렘세지드 박사는 논평했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는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석기를 발견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그와 그의 부인 메리가 이끄는 연구진은 (그들 부부가 명명한) 호모 하빌리스(`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는 뜻)라는 종의 유골을 발견했다. 이로써 "인류의 도구사용은 호모 속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통설로 자리잡게 되었다.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됐던 석기의 연대는 260만 년 전인데, 이는 최초의 호모 화석과 연대가 얼추 비슷하다. 연구자들의 추론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기후격변으로 인해 밀림이 초원으로 바뀜에 따라, 고인류는 새로운 기술을 발달시켜 초식동물을 사냥했다."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올도완 석기는 다른 동물들이 사용하는 도구와 차별화되는 특징을 가졌다. 예컨대, 침팬지를 비롯한 비인간영장류는 돌을 이용하여 견과류의 껍질을 깬다. 그러나 그들의 도구에는 올도완의 도구사용자들에서 볼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다. 올도완의 도구사용자들은 바위를 서로 부딪쳐 격지(flake)를 떼어내, 모서리가 날카로운 몸돌(core)만을 남겼다.

2010년 알렘세지드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에티오피아 디키카 지역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고 보고했다(S. P. McPherron et al. Nature 466, 857–860; 2010). 연구진은 340만 년 전의 동물뼈에서 `잘린 흔적(cut marks)`을 발견했는데, 340만 년 전이라면 유인원 비슷하게 생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유명한 `루시`와 같은 종)가 동아프리카를 어슬렁거리던 때다. 이는 인류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석기를 사용했던 시기가 260만 년 전보다 훨씬 더 이전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은 문제의 동물뼈가 자연적 마모(예: 악어에게 짓밟히거나 물어뜯김)에 의해 손상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견을 제시했다.

2011년, 이상과 같은 논란을 의식한 스토니브룩 대학교의 소니아 아르망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 서쪽에서 300만 년 이상 된 석기를 찾아내기 위한 발굴작업에 나섰다. 그러던 중 7월의 어느날, 연구진은 길을 잘못 들어 노다지가 묻혀 있는 땅으로 접어들었다. 연구진은 티타임을 갖던 중, 격지처럼 보이는 물체가 땅 위로 삐죽 솟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당 지역을 조심스럽게 발굴한 결과, 몸돌의 형태를 지닌 바위 몇 개와 수십 개의 석기들을 포함하여 19개의 유물이 출토됐다. 그런데 그중에서 작은 격지 하나가 몸돌과 - 마치 퍼즐맞추기처럼 -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이는 그 석기들이 바위끼리 부딪쳐 떼어내기(flaking)를 통해 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르망 교수팀이 발굴한 석기들은 330만 년 전의 지층에서 나왔으며, 크기도 올도완 석기보다 훨씬 더 커서 15킬로그램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따라서 연구진은 그 석기들이 올도완 석기와 구별되는 별개의 토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발견장소의 이름을 따서 로메크위 석기문화( Lomekwian culture)라고 이름붙였다. 이번 미국 고생물학회 연례회의에 참석한 아르망 교수는 "로메크위는 고고학 기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메크위 지역에서는 호미닌의 화석이나 잘린 동물뼈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아르망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석기의 제작자가 누구인지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진의 발견은 기존의 허약한 아이디어(`복잡한 석기 제작은 호모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에 치명타를 먹였다. 아르망 교수는 "유인원이나 원숭이의 서툰 솜씨보다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지닌 케냔트로푸스 플레이토프스(Kenyanthropus platyops: 투르카나 호수 서쪽 강변에서 발견됨)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로메크위 석기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더욱이 로메크위 석기는 숲 속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넓은 초원이라는 환경이 도구 사용을 촉진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무색케 하고 있다.

알렘세지드 박사는 로메크위 석기가 자신의 논란많은 발견(잘린 흔적이 있는 동물뼈)을 정당화해 준다고 믿고 있다. 알렘세지드 박사의 동료인 제시카 톰슨 교수(에모리 대학교, 고고학)는 아르망 교수가 발표하기에 앞서서, 디키아 지역에서 발견된 다른 동물뼈들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톰슨 교수의 발표 내용을 보면 2010년에 보고된 것과 유사한 패턴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동물뼈에 나타난 흔적이 자연적 마모보다는 도구에 의한 것임을 시사한다.

로메크위 석기 논쟁을 바라보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데이비드 브라운 교수(고고학)는 입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다. "아르망 교수가 제시한 석기는 진품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석기의 제작자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다. 자그마치 15킬로그램이나 되는 석기를 휘두를 수 있는 주인공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러나 브라운 교수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로메크위 석기가 제작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겠는가`이다. "로메크위 석기의 제작자들이 석기를 이용하여 당시 주변에 살던 호미닌들을 압도할 수 있었을까? 또는 300만~400만 년 전에는 - 지금까지의 생각과는 달리 - 도구사용이 좀 더 일반화되지 않았었을까? 어찌됐든 간에, 로메크위 석기가 인류의 진화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만은 분명하다"고 브라운 교수는 덧붙였다.(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