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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뉴스

채식을 할 줄 알았던 네안데르탈인

by 한국고고학콘텐츠연구원(플라스캠프) 2014. 6. 4.


스페인 남부의 유적지를 발굴하던 과학자들은 세계 최고(最古)의 화석화된 대변(분석: coprolite)을 발견하여 분석한 결과, 지금껏 전형적인 육식동물(quintessential carnivores)로 알려졌던 네안데르탈인들이 - 놀랍게도 - 상당량의 채소를 먹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5만 년 전 유럽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이 채소를 요리하여 먹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최초의 직접적 증거다.

지금으로부터 23만~3만 년 전 지구상에 살다 멸종된 네안데르탈인은 오랫동안 상위 육식동물(uber-carnivores)로 묘사되어 왔다(http://www.sciencemag.org/content/307/5711/840.1.summary). 그들은 북유럽과 아시아의 혹한(酷寒)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서 주로 고기를 섭취함으로써 높은 대사요구량을 충족시킨 것으로 여겨졌다. 과학자들은 유적지에서 출토된 (도살된) 고기뼈와 사냥도구, 그리고 화석화된 치아에서 검출된 탄소, 질소, 기타 화합물(네안데르탈인의 식단을 암시하는 화합물)을 분석한 끝에 이 같이 추론했었다.

그러나 최근 네안데르탈인의 치태(플라크)에서 전분(starches)이 검출됨으로써, `오늘날의 이라크와 벨기에 부근에 거주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은 풀, 덩이줄기(tubers), 기타 식물을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었다(http://www.sciencemag.org/content/331/6013/13.1.short). 심지어 이라크 부근에 거주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은 보리알을 익혀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이처럼 `네안데르탈인이 식물을 채취하고 보리를 익혀먹었다`는 추론은 `네안데르탈인은 고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바람에 멸종한 반면, 다재다능한 현생인류는 다양한 범위의 식물과 고기를 먹음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는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의 식단에서 채소가 차지한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 스페인 알리칸테(Alicante)의 엘 살트(El Salt)라는 유적지에서, 스페인과 미국의 연구진은 4만~6만 년 전(현생인류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퇴적층에서 화석화된 대변을 발굴했다. 식수 속에 포함된 대변을 검출하는 강력한 기법을 이용하여 측정한 결과, 연구진은 5개 퇴적층에서 나온 대변에서 고기와 식물을 나타내는 생체지표를 검출했다. 특히 연구진은 위장관 세균이 콜레스테롤, 스테롤, 스타놀(식물성 지방으로, 콜레스테롤과 유사함)의 소화과정에서 생성한 화학적 부산물까지도 탐지할 수 있었다. 검사 결과, 네안데르탈인의 대변에는 고기에서 유래한 콜레스테롤과 코프로스타놀(coprostanol)이 많이 들어 있지만, 식물성 스테롤도 상당량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식물을 섭취했음을 시사하는 명확한 증거다. 연구진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PLOS onE 6월 25일호에 기고했다(http://dx.plos.org/10.1371/journal.pone.0101045).

"이번 연구결과는 네안데르탈인이 실제로 식물을 먹었음을 입증하는 직접적 증거를 최초로 제시했다. 왜냐하면 이번에 검출된 생체지표는 치아가 아니라 대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연구진이 이번에 발굴된 대변을 인간의 것이라고 단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늑대나 사자와 같은 다른 포유류 동물들은 - 영장류와는 달리 - 고기 속에 포함된 콜레스테롤을 코프로스타놀로 전환시킬 수 없다. 둘째, 유적지에서 다른 영장류의 뼈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출토된 도구와 각종 유물의 연대가 현생인류가 유럽에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와 거의 일치한 다. 셋째, 대변의 형태와 구조는 인간의 것과 유사하며, 인간에게 기생하는 기생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견된 대변이 네안데르탈인의 것임을 입증하는 보다 명백한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 "화석화된 대변의 주인을 가리는 것은 어렵기로 악명 높다. 네안데르탈인이 거주했던 엘 살트 유적지에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동물들이 서식했을 것이다. 따라서 대변 샘플에는 다른 동물들의 대변에서 나온 생체지표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네안데르탈인이 무엇을 먹었는지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교의 마이클 리처드 교수(고인류학)는 논평했다. 리처드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의 식사에 포함된 동위원소를 연구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정말 흥미롭다. 이번 연구결과가 사실이라면, 네안데르탈인이 절대 육식동물(obligate carnivores)이라는 통설에 또 한 번 일격을 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진은 DNA, 인간 특유의 기생충 유형, 기타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문제의 대변이 네안데르탈인의 것임을 확실히 입증해야 한다"고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아만다 헨리 박사(고생물학)는 말했다.(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