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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뉴스

농경시대 이전의 인간들도 육식과 채식의 균형잡힌 식사를 했을까?

by 한국고고학콘텐츠연구원(플라스캠프) 2010. 10. 22.


인간의 조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명한 식생활을 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탈리아의 연구진은 인간이 식물을 갈아 가루로 만들어 먹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를 발견하였다. 이는 농경시대가 도래하기 2만년 전부터 곡물가루가 인간의 식탁에 올랐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냥꾼 인간`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초기 인류에 대한 광범위한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도한 단순화일 뿐이다. 물론 초기 인류의 식탁에서 고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식물 역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식물은 동물의 뼈보다 오래 보존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이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연마용 도구(grinding tools)를 발견했더라도 - 식물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 동굴에서 사용할 황토 덩어리를 으깨거나, 얼굴에 색칠을 하는 도구로만 생각되었다."라고 이번 연구를 지휘한 선사시대 연구소(이탈리아 플로렌스 소재)의 안나 레베딘 박사는 말했다.

레베딘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탈리아, 러시아, 체코의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연마도구에 붙어 있는 고대의 곡물을 발견하였다(첨부그림 참조). 연구진이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 숯의 연대를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 러시아 유적지의 유물은 약 32,000년이 경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 호주에서 31,000 경과한 것으로 추정되는 종자빻는 도구가 출토된 적이 있다.) 이번 발견은 농경사회가 시작되기 1만 년 전부터 인류가 곡물을 요리한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에 발견된 곡물은 주로 부들(cattail)이나 양치식물의 뿌리, 줄기, 잎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현대의 농부들이 생산하는 밀이나 보리와는 달랐다. 인류의 조상들은 곡물을 갈아 물과 섞은 다음 납작한 빵이나 수프를 만들어 먹은 것으로 생각된다. 식물을 채취하여 요리하는 것은 대부분 여자들의 몫이었으므로, 곡식을 빻는 작업이 존재했다는 것은 선사시대에서부터 이미 여성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이번 발견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발견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곡물 부스러기를 `밀가루`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선사시대의 인간이 사용했던 전분성 곡물(starch grains)은 21세기의 인간이 빵을 만들어 먹는 곡물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주변의 토양에서 발견되는 전분의 양을 밝혀내기 전에는, 그 곡물이 인간활동의 산물인지, 아니면 연마도구가 땅 속에 매몰된 후 우연히 달라붙은 것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산타클라라 대학의 리사 킬호퍼(Lisa Kealhofer, 인류학) 박사는 말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연마도구가 매몰된 후에 곡물이 달라붙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곡물은 변형되어 있었으며, 연마도구의 주위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고 반박했다.

한편 하버드 대학에서 석기시대를 연구하고 있는 오퍼 바 요제프(Ofer Bar-Yosef) 박사는, 현생인류가 3만 년 전에 식물을 갈아 먹었다는 생각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는 Science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인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네안데르탈인조차도 훨씬 복잡한 방법으로 식물을 요리해 먹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 요제프 박사의 주장은 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知的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네안데르탈인의 지적 능력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연구진에 의하면, 발굴지역의 고고학적 지층이 너무 섞여 있어서 네안데르탈인이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장신구와 도구가 실제로는 네안데르탈인들이 사라진 뒤에 같은 동굴에 살았던 현생인류가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참조 URL #1>)

애리조나 대학의 스티븐 쿤 박사(Steven Kuhn, 인류학)는 이번 유물의 시대보다는 발견 위치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연마용 도구가 사용된 `3만년 전`이라는 시대도 흥미롭지만, 인류학에서 최고(最古)라는 기록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경신되기 마련이다. 나는 곡물가루가 발견된 시대보다는, 그것이 발견된 지리적 위치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식물은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보다 흔한 것인데, 북반구의 유럽에 거주하는 인간이 식물을 채취하여 갈아 먹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이번 발견은 영양학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신석기 시대의 인간들은 농경생활을 통해 밀이나 보리를 재배했지만, 이번에 발견된 유물의 주인공들은 수렵·채집밖에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단지 야생식물을 채취하여 갈아 먹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계산에 의하면, 부들이나 양치식물일지라도 일단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에는 밀이나 보리 못지 않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이에 대해 케니언 칼리지의 브루스 하디 박사(Bruce Hardy, 고인류학)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잡식동물(omnivore)이다.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육식만으로는 살 수 없다. 만일 당신이 다른 영양소를 섭취하지 않고 오로지 고기만 먹는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은 당장 단백질 중독에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원본논문: "Thirty thousand-year-old evidence of plant food processing", PNAS, Published online before print October 18, 2010, doi: 10.1073/pnas.1006993107.